세벌식을 쓴지 20년 가까이 된다. 좋은점도 있지만 나쁜점도 많다.

내가 1992년 가을 세벌식을 처음 배울려고 마음 먹었을때는 이미 두벌식 자판에 익숙해져서 180타 정도는 나오던 때였다. 기존에 두벌식 자판을 독수리 타법으로 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한메타자로 열심히 교정을 한 결과였었다. 굳이 고생해서 두벌식을 배운 상태에서 세벌식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그당시 하이텔 플라자에 올라오는 공박사님의 글을 보고나서 과학적 이라는 세벌식 자판이 멋져 보인것도 있지만, 두벌식을 쓰면서 양쪽 새끼손가락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두벌식은 그 특성상 쉬프트키를 많이 눌러야 하기 때문에 새끼 손가락을 많이 사용해야 한다.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신체 구조-짧고 굵은-상 그게 상당히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어찌되었던 이미 두벌식을 배운 상태에서 세벌식으로 바꾸는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고 학교 숙제를 워드로 밤새서 쳐야 할때는 정말 미쳐버리는줄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타자 프로그램으로 쳐보면 세벌식으로 300타 정도까지 나올 정도는 되었다. 남들은 5,600타도 치고 전문적으로 치는 사람들은 1000타 까지도 나온다는데, 나는 그렇게 많이, 오랬동안 쳤음에도 불구하고 300타 정도인것을 보면 타자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나 보다. 

어찌되었던 세벌식은 마이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벌식 자판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나도 꽤 오랜시간을 IT 업계에서 일해오면서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을 세명정도 만나봤을 정도이다. 

예전에 세벌식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이야기 되고는 하는 자판이 드보락자판이다. 뭐 미국에서는 드보락도 많이 쓴다더라, 학교에서는 드보락을 가르친다더라, 쿼티는 꾸리다.. 뭐 이런 이야기였었는데, 역시 드보락 자판도 마이너한듯 하다.


아마도 나는 죽을때까지 세벌식 자판을 쓰게 될것이다. 하지만 내 자식이나 다른 지인에게 세벌식을 가르치거나 강요는 하지 않을꺼다. (불쌍한 내동생. 형과 같은 컴퓨터를 써야 했다는 이유만으로 IT 업계에 종사하지도 않으면서 세벌식을 쓰고 있다.) 왜냐면 세벌식은 시장에서 점점 사라지고, 세벌식 사용자는 점점 희귀동물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하게도.

최소한 중/고등학생, 보통 대학교때 컴퓨터를 처음 만지게 되던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미취학때부터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누군가 세벌식과 두벌식의 장단점을 알려주고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에 없다. 누군가 (아마도 부모가) 의무감을 가지고 아이에게 세벌식을 가르치기 전에는 어린아이가 세벌식으로 자판을 스스로 선택하여 배우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두벌식을 배우고 나면 세벌식으로 바꾸는것은 처음 세벌식을 배우는것보다 몇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4,50년이 지나면 세벌식 사용자는 멸종 위기 동물이 될것이다. 



나는 c/c++ 을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c/c++ 이 업계 주류이고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점점 그 이용자가 줄어드는듯 하다. 

하지만, 세벌식과 마찬가지로 c/c++ 은 시간이 지난후 이 언어를 선택한 사람에게 후회를 안겨주지는 않을것이며, 그 유용성으로 인하여 당분간 사라지지도 않을것이다.


응? 세벌식 이야기 였는데?


Posted by 키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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